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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신전

Statement

by jiyoungmoon 2020. 12. 16.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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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엄마는 늘 기도를 했다. 이유 없이 더딘 자식을 위해, 숨 돌릴 틈 없이 수술과 치료를 반복하는 아픈 손가락 때문에. 어디로 이사를 가든 엄마는 자신만의 신전을 차렸다. 때로는 어항 위에, 때로는 서랍장 위에, 그것도 어려울 땐 손바닥만한 밥상에 엄마의 간절한 소망을 풀어 놓았다. 넓지도 않은 집에, 일상의 자질구레한 흔적들이 그대로 남아있는 자리에도 엄마의 신전은 늘 차려졌다. 손에선 염주가, 입에선 불경이 떨어지는 날이 없었다. 아빠가 수소문 해 집으로 불러들인 사람들은 동생 방을 비워 신당을 차렸다. 무서운 인상을 하고 알록달록한 차림을 한 신령상(像)들이 가득했던 그 방을 지날 때면 목 뒤가 서늘해지는 것만 같았다. 

 

2

어린 시절 여행의 기억은 대부분 절에서 시작해 절로 끝난다. 산이 많고, 그만큼 절도 많은 이 땅에서 여행 중에 절을 방문한다는 게 대수롭지 않은 일이기도 하지만, 우리 가족은 달랐다. 경유지가 아닌 목적지. 여행의 주된 이유는 기운이 좋고 영험하기로 소문난 절들을 찾아다니면서 동생이 낫기를 기원하는 것이었다. 친구들이 눈썰매장에서 신나게 눈 위를 달릴 때, 나는 길도 나지 않은 산속의 암자에서 오들오들 떨며 입에 붙지도 않는 불경을 외야 했다. 

 

3

내가 정말 슬펐던 이유는 눈썰매장에 가지 못해서가 아니었다. 절박한 내 부모에게 썩은 동앗줄을 내밀면서 흔들어 댔던 사람들과 하릴 없이 그 끝이라도 잡으려고 애썼던 부모님의 모습 때문이었다. 남들보다 더디고, 어딘가 조금은 이상한 동생의 말과 행동들의 원인은 전생의 업보가 되었다가, 방향이 틀어진 누군가의 원한 때문이기도 했다가, 알 수 없는 신적 존재의 노여움이 되기도 했다. 그 때마다 내 부모는 그것들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구했고, 마음을 다한 기도와 정성부터 굿, 고사, 제사까지 말 그대로 물불을 가리지 않고 애를 썼다. “내년부터는… ”,“이듬해에는…”,“이것만 해결하면…” 희망과 절망이 널을 뛰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그 끝엔 오롯이 자신만을 탓하는 엄마가 있었다. 

 

4

나는 늘 내가 겪고 있는 현실의 사소한 경험들이 사회와 어떻게 닿아 있는지를 고민해왔다. 나에게 닥친 불운이나 어려움은, 생각해보면 나의 탓이기 보다는 체계의 오작동으로부터 시작된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불운이라기보다는 ‘다름’에서 비롯되는 불화인 경우가 더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순간 나는 엄마처럼 나를 탓하고, 업보와 사주를 입에 올리고 있었다. 가볍게는 별자리와 오늘의 운세를 힐끔거리는 것부터 기도와 염원에 모든 것을 쏟아 붓는 일들이 유독 여성들의 삶과 맞닿아 있는 것은 왜일까. 알 수 없는 이유로 일어나는 부당한 일들을 수없이 겪어내고, 자신에게 주어진 선택권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삶 속에서 ‘운’이나 원초적 존재에 겨우 기대볼 수 있는 건 아닐까. 

 

5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가정을 함께 꾸렸지만 엄마에게 주어진 책임은 아마도 아버지의 것과는 달랐을 것이다. 장애가 있는 아이를 낳았다는 이유로 평생 자신을 탓해야 했고, 돌봄노동으로 인해 늘 쪽잠을 자면서도 집안에 도움이 못된다며 엄마는 죄스러워 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오로지 기도뿐이라서, 이것 밖에 할 수 없기 때문에 이리도 매달린다 말했다. 하지만 엄마의 기도 속에 정작 자신은 없었다. 

 

6

엄마는 오늘도 기도를 한다. 경전을 필사하고, 초를 밝히고, 기도문을 읊조리며 정성을 다한다. 내게도 나의 가정을 위해 열심히 기도하라고 일러주신다. 내가 기도를 하도록, 기도를 하신다고 한다. 엄마의 절박한 매달림에도 늘 침착하고 음전하던 성상의 모습이 엄마의 얼굴에 겹친다. 엄마의 기도 속에 오늘은 엄마를 위한 기도가 꼭 있었으면 한다. 

 

2019년, 문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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