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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보통의 존재

Statement

by jiyoungmoon 2020. 12. 16.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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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시각장애와 지적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동생과 함께 성장하면서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의 입장을 체험하면서 살아왔다. 2년 전 암으로 투병생활을 하게 된 어머니까지 부양하게 되면서, 그들의 존재감에 대해 더 깊이 고민하게 되었다. 가족이라는 틀을 벗기고 바라 본 그들은 스스로 온전히 보살필 수 없는 ‘보통이 아닌 몸(extraordinary body)’을 지닌 젊은 여성과 늙고 병든 노인이 된다. ‘어머니’, ‘동생’과 같은 평범하고 친숙한 존재는 장애인, 여성, 환자와 같은 주변적인 정체성을 지닌 사회적 존재로 다가오게 된다.

   이런 상황 속에서 ‘보통’의 가치를 되묻는 것은 작업을 발전시켜나가는 과정이자 전부였다. ‘보통’은 대개 가치 평가에서 벗어나 있으며, 완충적이고 적당한 경우에 선택되는 단어다. 일종의 기준이지만 하향평준화 되어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도덕적으로나 정치적으로도 문제가 없어 보인다.  보통 사람, 보통 취향, 보통 연애와 같은 수사는 소박하고 수수한 표현으로 소비된다. 그럼에도 이것이 기준이나 표준으로 작용할 때, ‘보통’은 폭력이 되기도 한다. ‘보통’이 아닌 존재들에게 보통의 기준이 위험한 이유는 평범하고 일반적이라는 이유로 함부로 강요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소한 일상은 사건이 되고, 보통의 삶은 절망이 된다. 

    ‘가장 보통의 존재’는 결코 보통의 존재로 살아갈 수 없는 이들에 대한 역설적 표현이다. 나아가 이들이 ‘다르다’는 이유로 구분되고 격리되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우리 주변에서 언제 어디든지 존재하고 있는 사람들임을 선언하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들의 ‘특별함’은 열등하고 불편한 것으로 인식되고, 자연스럽게 부끄러운 것, 혹은 겪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 ‘불행’정도로 여겨진다. 캔버스에 드러난 어머니와 동생의 모습은, 이러한 이유들로 사회 속에서 숨겨지고, 무가치하게 여겨지는 존재들을 대변한다. 그림 속에서 이들의 신체는 과장도 미화도 되지 않는다. 그들의 덤덤한 시선은 오히려 자신들을 바라보는 관객들에게 되묻는다, 당신은 보통의 존재인가. 

   이들의 일상적 모습을 화면으로 옮기면서 나는 한 인간을 ‘보통이 아닌 존재’로 만드는 조건 –비정상성-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했다. 눈빛, 얼굴, 옷차림, 행동에서 그들이 ‘비정상’이라고 판단 될 수 있는 어떤 단서도 찾지 못했다. 사회가 부여한 언어적인 명명을 제외한 다른 것들에서 그들이 정상인지, 비정상인지를 구분하는 기준은 관점과 입장에 따라 언제든 바뀔 수 있다. 

   다시 말해, 그 구분은 허구적이고 불필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상대를 재단하고 판단하면서, 자신의 안녕을 확인하기에 바쁘다. 사회라는 거대한 집단 속에서 ‘다름’과 ‘차이’는 그저 보기 좋은 허울일 뿐이다. ‘약자’라는 이름은 배려처럼 보이지만, 개별 존재의 삶을 들여다보려고 하지 않는다. 그들 각각의 존재를 이해하는 것보다는 다름을 약점으로 부각시키는 것이 훨씬 간편하기 때문이다. 사회는 이들이 직면하는 신체적·정신적 어려움을 개인의 부덕함이 만들어 낸 불행으로 여긴다. 덕분에 많은 사회적 비용들을 절감하고, 효과적으로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듯하다. 하지만 그들의 ‘불행’은 결코 개인의 잘못이 아니다. 그저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다. 가장, 보통의, 존재들일 뿐이다. 

 

2016년, 문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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