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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 빈 눈빛을 그녀는 우리에게 전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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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youngmoon 2022. 10. 14. 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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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 빈 눈빛을 그녀는 우리에게 전해주었다 (2016)

 

                                                                                                                방정아, 화가

 

  멘토링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초반에는 문지영 작가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아버지의 부재, 시각장애인이자 지적 장애인인 동생과 병든 엄마를 부양하면서 겪어낸 삶을 가만히 들었다.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응급의 사태에 늘 스탠바이 해야 하는  팍팍한 시간들이었다.  그야말로 겪어보지 않으면 제대로 알 수 없을 그런 일상들을 작가는 글로 혹은 그림으로 기록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 이야기를 이어가는 내내 작가의 균형감있는 언어 선정과 태도는 , 작가 스스로 수없이 들어야 했던, 가족의 불운을 그림 소재로 삼았다는 비난에 대한 피로감과 그래서 더욱 그들에 대해 객관적 태도를 취하려 애쓴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지적장애인이 사회의 일원임에도 불구하고 아직 음지에서 양지로 나오지 못했고 그래서 마치 존재조차 하지 않는 존재로 인식되고 있는 문제에 나 역시 그동안 크게 아는 바가 없었다. 그러한 무지는 또 하나의 편견과 비의도적 폭력을 낳을 수도 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다양한 방법으로 그들을 노출시키는 것이야말로 장애나, 질병 혹은 다름이 사회적으로 구성된 허구적 개념(문지영 석사논문 중 인용) 임을 까발리는 것임에 동의한다.

  처음 문지영 작가의 작업실에 가게 되었을 때이다. 막 새로 입주한 그의 작업실에는 아직 포장이 풀리지 않은 제법 많은 양의 캔버스가 벽에 세워져 있었다. 포장을 하나하나 풀어보면서 드러나는 생생한 유화작품은 근래 미술판에서 언제부터인가 잊혀 버려있던 무언가가 다시 와 있는 느낌이 들었다. 작품을 사진으로 볼 때와는 사뭇 다른 생동감이었다. 아직 painting 기법들을 익히는 단계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도 아닐 정도로 물리적으로 작업한 시간들이 길지 않지만 그러나 그 발전 속도가 빠른 편이라고 느꼈다. 앨리스 닐, 루시안 프로이드 등의 작업을 좋아한다고 했고 난 그럴 수 있겠다고 이해했다.

  개인적으로는 영상작업이 좋았는데 장애인의 증명사진을 합성하는 영상작업 <paradoxical faces>은 감동적이면서 또 섬뜩하였다.  장애인들의 비뚤어진 코와  눈 , 입 등을 일반인들처럼 좌우 균형을 맞추거나 모양을 반듯하게 도려내며 만들어가는 장면 뒤에 아름다운 음악이 배경으로  깔린 채 아무렇지도 않은 듯 장면들이 이어져갔다.

만학도로서 학부에서부터 다양한 매체를 이용한 성실한 작업을 해왔던 과정도 볼 수 있었는데 설치에서도 그 가능성을 엿볼 수 있었다. 흔들리는 철사 상자들 <still seventeen>,  건물을 덮은 거대한 생리대<Pieces for everyone>, 남자 생리대 작업 <매너지 클래식>에서 그녀 나름의 남성주의적 사회통념에 대한 반격을 시도한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미술을 시작한 이유가 페인팅이었던고로 여전히 페인팅에 재미와 매력을 느끼고 있고 그것을 계속 잡고 갈 의지가 강했다.

  앞서 언급했듯이 늦게 시작한 미술공부를 지속하기 어렵게 만들 뻔했던 이유가 되었던 엄마와 여동생이 결과적으로  이후 작업의 매개가 되고 그의 시선을 고정시키게 한 대상이 되었다는 점도 조금은 아이러니하다. 이미 사회적 약자, 소수자에 대한 관심을 실제 사회생활에서 이어간(정치외교학 전공으로서 사회복지 관련 사회활동을 한 바 있는) 그가 처음 가족을 대상으로 작업한 작품은 특히 그동안 그가 겪었을 법한 가족의 아픔이 집약적으로 표현되어있다.

거대한 여동생과 그 아래 깔릴 만큼 쭈그리고 앉은 엄마의 이미지를 그린 작업 인 <모녀의 여름>은 초기작으로서 재료를 다루는 데 있어서 서툰 부분이 많았음에도 흥미로왔다. 그 이분법적인 생경함에도 불구하고 살짝 미래에 이러이러한 작업도 가능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게 했다.

  멘토링 프로그램 진행 과정 동안 몇 달간  문지영 작가의 작업실을 드나들면서 그가 적지 않은 시도와 변화의 과정을 겪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은연중에 멘토링이라는 이름하에 내가 추구하는 조형성을 강권하지 않았나 하는 염려가 드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결국 내가 많이 권했던 이미지들로 간 것은 아닌 것 같다.  문지영 작가에겐 스스로 형식적 자유로움을 좀 더 갖고 싶었던 것 같다. 이를테면 화면 구성에 있어 이야기성이 강조되고 배경이 강조되는 작업을 나는 권했으나 화장하는 동생의 모습을 그린 작업 이외엔 많이 진행되지는 않았다.

아마도 앨리스 닐이나 루시안 프로이드에서 보이는 압축되고 강렬한 인체 자체에 대한 표현과 탐구에 더 매료되어 있는 것 같았다.

  아무튼 짧은 시간 동안 자신의 탄탄한 붓질의 장점을 버리면서 획득한 것은 화면의 평면성과 깊이감인 것 같다. 많은 성과를 이룬 듯하다. 회화 특유의 매력은 과연 무엇일까? 기술적인 정교함은 물론 아니다. 그 너머 아스라이 잡히기 어려운 지점이 있는데 그건 화면 구성, 화면 인물에서 스며 나오는 이야기, 탁월하게 다뤄지는 재료 등 워낙 복합적이긴 하나 결국 그 맥락이 관객에게 전달되는 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치 않은 것 같다. 그건 모든 회화작가에게 과제이기도 하다.

  장애인 영상 및 사진 작업 진행을 위해 장애인 가족을 만나 설득하는 지난한 과정도 그가 작업에 대한 긴장감을 유지할 수 있게 한 또 하나의 동력이 되지 않았나 싶다. 치밀하고 섬세한 준비로 그들을 대하는 태도에서 앞으로 또 다른 형태의 유사 작업도 잘 해나갈 것 같아 보였다. 비교적 선명하게 사회를 바라보고 있었으며 가능성과 스스로의 한계 또한 인식하고 있는 듯했다. 물론 아직까지는 그녀가 지향하는 바와 실제 작품의 간극이 적지 않다. 하지만 그녀의 세계를 바라보는 명확한 관점과 방향성, 무엇보다 작업에 대한 치열한 근성은 그러한 우려를 약화시킨다. 그녀가 보아내는 사회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긴 작업의 여정을 잘 펼쳐나가리라 기대해본다. (2016년 『MENTORING』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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